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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LOVED/FF142023. 10. 3. 00:34종언을 막아내고 나니 뒷처리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우편함에 잔뜩 꽂힌 우편물로도 모자라서 접수원인 타타루가 가져온 소포도 한가득이었다. 어느정도 읽고 처리했다고 생각하면 배달부 모그리가 끙끙 거리며 무거운 가방을 지고 날아왔다. 편지니 택배니 하는 것들만 쌓인 것은 아니었다. 그는 우선 에오르제아 3개국을 바쁘게 돌아다니며 사람들에게 인사하고 다녔다. 아직 종말의 여파가 남은 일사바드 대륙이나 그간 잘 방문하지 못했던 동방 등지에서 용병업을 맡기도 하고 자투리 시간에도 자질구레한 부탁이나 임무를 받고 다녔다. 새벽의 혈맹은 공식적으로는 해산되었으나 링크펄 등으로 연락이 계속 오갔고 그들 사이의 구심점은 여전히 그였기에 이동 중에도 쉴 새 없이 근황을 보고하거나 통신의 교통 정리를 맡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에게 걱정을 건네며 휴식을 권했지만 그의 앞으로 쌓인 일들이 신경 쓰여 울티마 툴레로의 여정에서보다도 빡빡하게 움직이곤 했다. 그럼에도 그는 정말로 괜찮았다. 그는 그다지도 강한 사람이었으니까.
열 개쯤 남은 우편물 사이에서 영웅은 림사 로민사의 브리샐에게서 온 편지를 발견했다. 그는 시오르 티아가 림사 로민사를 떠난 후 좀처럼 편지를 하는 일이 없었다. 반가운 마음에 그는 다른 편지를 제쳐두고 풀을 떼어 편지를 꺼냈다. 서신 내용은 길드 일손이 너무 부족한데 중요한 의뢰가 들어와서 도와주러 올 수 있겠냐는 부탁이었다. 기한일이 마침 오늘까지여서, 그는 그 길로 곧장 일어나 림사 로민사로 향했다.
브리샐은 날디크와 비멜리 사의 문을 열고 들어온 시오르 티아를 반갑게 맞이했다. 여전히 위장이 약한지 그는 도착한 영웅에게 조용히 마감 기한이 다 되어 가는데 손을 못 쓰고 있었다며 울상을 지었다. 정말로 그가 오지 않았더라면 어떻게든 해냈겠지만. 시오르 티아는 곧장 제가 쓰는 단조망치를 꺼냈다. 그는 전문 장인이었기에 대장장이의 소울 크리스탈을 가지고 있었고, 크리스탈을 교체하자 단숨에 작업장으로 환복했다. ……그게 그가 개인 공간에서 입던 작업복이라는 것이 문제였지만.
그는 좀처럼 몸이 드러나는 옷은 입지 않지만, 블랙 스미스로써 작업 할 때는 대장장이 전용으로 제작된 앞치마만 입었다. 유소년기에 브리샐에게 처음 대장간 일을 배울 땐 열을 견디지 못해서 웃옷을 입은 위에 앞치마를 둘렀지만 성년이 된 후에 일에 숙달되고 더군다나 오랜 여정에서 내열성이 터무니없이 높아지는 바람에 맨 몸에 묵직한 앞치마만 두르고 작업하게 된 것이었다. 장갑도 가벼운 것으로 간소화 되어서 팔을 반 정도 덮을 뿐인 제련소 장갑으로 바꾼지 오래 되었다. 브리샐은 그가 성년이 되고 대장간 일을 하는 걸 본 적이 거의 없었기에 환복한 그를 보고 질겁해 뒤로 물러섰다. 어릴 적에도 좀처럼 몸이 드러나는 복장을 하지 않던 그가 등이며 어깨, 양 팔이 시원하게 드러난 복장을 하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브리샐이 놀란 것은 복장 그 자체라기 보다는 그 모습으로 드러난 전신이 믿을 수 없을 만큼 흉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곧장 고글을 내리고 망치를 고쳐 드는 시오르 티아에게 얇은 겉옷을 덮어주었다.
"후배들이 놀랄 것 같아."
"뭐가… 아. ……네."
그는 납득한 듯 가방을 뒤져 적당히 앞치마 안에 입을 만한 옷을 입고 그 위에 앞치마를 다시 씌웠다.
의뢰 받은 물건은 이미 블랙 스미스로 이름을 날린 시오르 티아에게 그렇게 어려운 것은 아니었다. 레시피와 거기에 쓰일 재료 품질이 낮은 것이 난제였으나 필요한 광석은 직접 캐오면 그만이었고 중간 재료가 저품질이라면 새로 고품질로 만들면 되었으니까. 생각보다 싱겁게 제작이 끝나자 시오르 티아는 직접 납품하러 다녀오겠다며 의뢰인을 찾아가 무기를 건넸다. 만족스러웠는지 웃돈을 받았지만 눈앞의 사람이 직접 만들었을 것이라는 생각은 못했는지 다음에는 꼭 만든 장인을 소개해달라며 법석을 떨었다. 시오르 티아는 떨더름하게 대답하고 받은 돈을 세어본 뒤 길드로 돌아왔다. 그대로 올드 샬레이안으로 돌아갔어도 괜찮았겠지만 어차피 여유가 조금 생긴 김에 브리샐의 일을 거들까 생각했다. 그는 돌아와서 브리샐에게 받은 돈을 내밀었다.
"네가 만들었는데 네가 가져야지. 수수료 정도만 줘도 돼."
"전 돈은 딱히 필요 없습니다. 길드 운영 자금으로 쓰십시오."
"…그런 면은 하나도 안 변했구나."
브리샐은 머쓱하게 뒷목을 긁적이더니 수긍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시오르 티아는 접수원에게 돈주머니를 내밀었다. 신식 장비 대금이라 그런지 주머니가 묵직한 것이 느껴졌다.
"전 딱히 변했다고는 생각지 않습니다만."
시오르 티아는 브리샐의 앞에 쌓인 의뢰 목록을 보고 혼자 뚝딱거리기 시작했다. 조그만 간이 작업대를 두드리는 소리가 상당히 규칙적이고, 또 맑게 느껴질 만큼 컸다. 그는 단 하나의 광석도 허투루 쓰지 않고 아끼고 다듬어 정성스럽게 물건을 만들었다.
"옛날엔 작업대 열도 잘 못 견뎠잖아."
"…그거야 그땐 그 정도로 고온의 환경을 처음 봤으니까요."
"그래. 그때도 넌 잘 참고 빠르게 익숙해졌지. 옛날에도 의지가 되고 의젓한 아이였지만 지금은……."
브리샐은 머뭇거리다 기어이 궁금한 것을 묻고 말았다.
"그 상처들은 역시 네가 그렇게 단단해진 과정의 흔적이겠지?"
"……그렇게 거창한 것은 아닙니다."
누구나 다 가지고 있는 거죠. 그는 무심하게 대꾸하며 망치를 두드렸다. 그는 아주 섬세한 사람은 아니었지만 오랜 시간 단련하고 경험을 쌓은 끝에 부족한 세밀함을 힘과 정성으로 채울 수 있게 되었다. 그는 완성된 물건들을 잘 포장하여 책상 옆에 두고 명단에 줄을 그었다. 그가 만든 것들은 무엇 하나 빠지지 않고 빛이 났다. 한 열 개 쯤 만들었을 때 그는 잠시 고글을 올리고 바닥에 편하게 앉았다. 물건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그는 무언가 하나를 만들 때마다 특수 처리 된 고글이나 안경을 써야 했고 그것이 장시간 이어지면 매우 피로했다.
"아말쟈 족이 숭배하는 화염의 야만신이 있습니다."
"나도 알아. 이프리트지? 지옥의 화염을 다루는."
"네. 그곳에서 처음으로 화상을 입었습니다. 일상에서 있는 가벼운 화상은 레스토랑 일을 하면서 꽤 자주 있었지만 그것과는 정도가 달라요. 그리고 다음은 오고모로 화산구였습니다. 그곳도 불꽃신의 제단만큼은 아니지만 꽤 높은 온도를 자랑합니다."
대화 사이사이의 정적에는 대장장이들의 망치 소리가 가득했다. 오히려 그렇기에 누굴 신경쓰지 않고 말할 수 있었지만.
"그 밖에도 여행을 하면서 고온의 환경에는 여러 번 갔었습니다. 직접 불을 맞은 적도 있고… 직접적으로 화상을 입는 경험도 많이 했는데, 그땐 아직 경험이 별로 없기도 했고…… 찔리거나 베이는 상처보다도 훨씬 아프고 오래 앓았습니다."
"불에 타는 고통이 제일 강하다고도 하잖아. 당연한거지."
"하지만 제가 전사라고 불릴 수 있게 됐을 때부터 상황이 달라졌어요."
시오르 티아는 잠시 바닥에 내려 둔 제 도끼에게 눈길을 줬다. 이슈가르드에 가기 전에 인조 정령과 교감하여 만든 아니마 웨폰이었다. 양날에 두른 붉게 타오르는 그 불길이야 말로 시오르 티아의 오랜 상징이었다.
"소울 크리스탈을 얻었을 때부터 심장 어딘가가 불타는 느낌이 들었어요. 야만신을 토벌하러 갔을 때 겪은 화상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강렬하게, 그리고 또 아프게. 그때부터는 화상이 그다지 아프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랬구나. 뷔른쵠 씨가 계신 도끼술사 길드의 도끼술사들과는 다른거지?"
"예. 그걸 원초라고 불러요."
제가 가진 근본적인 힘이죠. 그는 부연 설명을 붙였다.
"저는 그걸 뒤나미스와도 같은 초자연적인, 어떤 설명하지 못할 에너지라고 생각했지만 어쩌면……."
"어쩌면?"
"…잘 모르겠습니다. 언젠가부터 저는 제 감정을 남에게 드러내지 못하게 됐고, 속에 쌓여만 간 감정이나 생각들이야 말로 원초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게 파괴력의 원천이 되고… …복잡한 건 잘 모르겠지만요. 예를 들자면, 생사의 기로에서 괴력이 나오는 것과 비슷합니다."
"그렇게 말하니 이해가 가는 걸."
브리샐은 가만히 대꾸하다가 진심 어린 걱정을 건넸다.
"…너무 혼자 견디는 것도 좋지 않아, 오르."
"저도 압니다. 하지만…… 이 무게를 함부로 나눠도 될지 모르겠습니다."
이미 각자가 각자의 무게를 지고 있으니까요. 그 뒤로 주고받는 말은 없었다. 대답보다 더 묵직한 단조망치 소리만이 길드를 가득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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