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의 나에게

BELOVED/東洋組2021. 1. 19. 18:26

@Dominant_7

 

어느 여름날. 하늘은 구멍이라도 난 듯 시린 물을 쏟아내고 있었다.

 

"...비가 많이 오는구나."

 

여느때와 같이 대청에 앉아 빈 곰방대를 우물대던 하율이,

 

"미련이란 당초에 쉬이 정리되지 않은 것이겠지만, 빗소리를 듣다 보면 심란했던 속이 점차 정리되고는 하지."

 

하고 말을 꺼내더니 이내 일어나 빗물이 떨어지는 처마에 손을 뻗는다.

톡, 톡. 그는 자신의 흰 손에 떨어져 흩어지는 물방울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당신에게 시선을 향한다.

 

"하여 나는 빗소리도, 내리는 비를 가만히 맞고 있는 것도 꽤나 좋아하는 편이다."

 

"...물론 요즘들어 비를 맞는 건 자제하고 있다만."

 

네가 걱정하지 않나. 하며 슬쩍 미소짓는 모습은 잘 보이지 않았지만, 또 안 보여준다며 불평하면 이제는 익숙하지 않나. 하며 장난스레 웃어보이는 것까지도 당신은 알고있을 터이다.

 

"네게 강권하지는 않겠다. 다만 고민이 있다면 내리는 비를 지켜보는 것도 좋겠지."

 

왜 이런 이야기를 내게 해 주는 것인가. 의문 가득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면 하율은 다소 머쓱한듯 팔짱을 끼며 시선을 돌려 던지듯 대답한다.

 

"최근 표정이 영 좋지 않아 말이야. 계속 그리 있으면 걱정되지 않나. 나는 의지가 되지 않나?"

 

다소 풀죽은 목소리였을까. 슬픈 얼굴이었을까.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가 당신을 걱정하고 있다는 것이겠지.

 

"뭐.. 그래. 말 못할 고민도 있기 마련이니 말이야. 굳이 묻지 않으마."

 

처음과 같이 당신에게 등을 돌리고 앉은 뒷모습에서 문득 나직한 말소리가 들려온다. 당신만을 위한 위로의 말.

 

"내가 아는 너라면, 그리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매번 어떻게든 좋은 결과를 얻어내던 아이였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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