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같지도 않은 소리.

BELOVED/東洋組2021. 1. 19. 18:23

@Dominant_7

 

   하율은 머리를 끝까지 땋을 때까지. 당신의 질문 하나에 대한 아주 간단한 -그저 정황상 그럴 것이라는- 대답을 제외하고는 묵묵히. 손과 머리가 스치는 소리와 바람에 옷깃이 나부끼는 소리를 제외한다면 그 어느 소리도 들리지 않을 만큼이나 조용히 당신의 이야기를 듣고만 있었다. 그러고는, 정갈히 땋아진 머리 끝을 묶은 끈을 손에서 놓지 못하고 가만히 생각을 정리한다.

 

   오랜. 그러나 짧은 시간동안 정리한, 의사가 의사에게 전하는. 어쩌면 최후의 가르침일 수도 있었을 몇 마디.

 

   "부상? 당연히 앞으로 심해지겠지. 액자를 숨긴 이를 찾아 내어 족치기 전까지는 계속 심해질 거다. 정황상이라고는 하였으나 추측할 것도 없이 확실히 말이야. 다만 그들을 챙기느라 의사 본인의 몸을 축내는 것은 본말전도다. 그저 노력하되, 자신을 해하지 않는 선에서 책임을 다하는 직업. 그것이 의사다."

 

   "만약 네가 다른 이들을 치료하다가 기력이 쇠해 쓰러진다면? 혹은 다쳐온 이를 계속하여 치료해내는 너를 습격자가 우선적으로 노린다면. 그 때는 어떤 생각이 들겠나. '아, 내가 모자라서 더 많은 이들을 고치지 못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겠나. 아니면 그저 '지금 당장 죽고싶지 않다' 는 생각이 들겠나. 정상적인 인간이라면 타인보다 본인을 먼저 챙길 것이고, 그건 나뿐만 아니라 너도, 그 누구도 전부 해당하는 것이겠지."

 

   "아무튼. 결론을 말하자면, 네가 하고싶은 대로 하라는 것이다. 네가 만약 다른 이를 챙기다가 쓰러진다면. 습격당할 위기에 처한다면. 내가 네 옆에서 자리를 지켜 줄 것이니."

 

   "의사는 의사이기 전에 인간이고, 인간이란 이기적인 동물이다. 마지막 가르침으로 할 예정이었지만, 유능한 제자 덕에 더 가르칠 것을 찾아야겠어. 여러모로 번거롭기만 한 제자 같으니라고. 스승의 입장도 조금은 생각해 보란 말이다."

 

   어느새 끈을 잡고 있던 손은 소매 속으로 감추어진 채, 가만히 등을 돌렸다. 선택을 바라는 이에게 알아서 하라는 답변을 남기는 것은 상당히 미묘한 것이었으나, 결국 선택은 본인이 해야 할 것이고, 그 선택에 의해 일어날 일에 대한 책임 또한 본인이 져야 하겠지.

 

   "정 선택하지 못하겠다면, 하고싶은 대로 하고 나서 내가 네 선택을 강요했다고 생각하도록. 예로부터 제자의 잘못은 또한 스승의 잘못이라 하였지."

 

   책임을 온전히 짊어져 주는 것은 불가하다. 하지만, 나누는 것은. 혹은 덜어주는 것은. 어쩌면 가능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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