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미 우는 여름의 선로
DREAMING/ACE OF DIAMOND2021. 1. 23. 00:13도쿄의 여름은 무더웠다. 매미가 사방에서 울었다. 기온은 날이 갈수록 가파르게 올라갔고 가만 서있기만 해도 불쾌한 땀이 교복을 적셨다. 봄의 파릇한 싹이 무성해져 녹음이 우거졌다. 낮이 부쩍 길어졌다. 자판기에 매진이 늘었다. 매점에 하드바가 동나는 날이 많아졌다. 그라운드 곳곳에 대형 선풍기가 설치됐다. 청심관 식당 에어컨을 켜기 시작했다. 매니저가 옮기는 얼음 양이 많아졌다. 가끔 아스팔트 위로 아지랑이가 어른거렸다. 교실에서는 여름 방학, 야구부에서는 여름 예선 대회 얘기가 한창이었다. 어디를 봐도 작년과 똑같은 여름이었다. 먼지 쌓인 책상 위에 누구도 꽃을 두지 않게 된 것만이 달라진 도쿄의 여름. 유우키는 턱을 괸 채 멍하니 창 밖으로 매미 소리를 쫓았다. 창 밖 어디를 봐도 매미의 시선이 느껴졌다. 그는 계절이 네 번 바뀌어 여름이 다시 돌아오는 한 해 동안 이전의 집중력을 잃었다. 그는 종종 나사가 빠진 기계처럼 삐걱였고 넋 나간 듯 어딘갈 멍하니 쳐다보는 버릇이 생겼다. 그 시선이 향하는 곳은 아무것도 없는 허공이거나, 창 밖 하늘이거나, 그것도 아니면 일 년 째 비어있는 자신의 옆자리였다. 일단 시선을 돌리고 나면 불러도 알아채는 게 늦을 정도로 그는 깊은 생각에 빠졌다. 그를 현실로 데리고 오는 것은 오로지 자신이 세이도 야구부를 이끄는 캡틴이라는 자각 뿐이었다. 그라운드에 설 때만이 오롯이 자신이 하는 일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어떤 일이 있었든, 유우키 테츠야는 여전히 건실한 4번 타자였고 우수한 1루 수비수였다.
유우키는 갑작스럽게 변했지만 누구도 그것을 이상하게 여기진 않았다. 오히려 그렇게 될 것이라고 누구라도 그렇게 생각했다. 그 옆자리가 비게 된 작년 여름부터 그는 돌연 그렇게 됐으니까. 그것은 사고, 였다. 사고, 였을까. 어느새 유우키의 시선은 보이지 않는 매미가 덕지덕지 붙은 창문에서 떨어져 텅 빈 자신의 노트로 향했다. 썩 좋지 못한 종이였기에 성실하게 공부한 흔적이 뒷장까지 번져있었다. 그는 그 위에 수업과 관련 없는 내용을 끄적였다. 적을 게 생각나지 않아서인지 결국 야구 얘기였다. 그는 한참을 프로 야구 선수의 이름을 줄줄 쓰다가, 샤프펜을 필통에 넣었다. 언제 빌렸는지도 잊어버린 주인 없는 연필이 보였다. 유우키는 또다시 그 연필에 시선을 뺏겨, 밖으로 꺼내놓고 한참을 만지작거렸다. 그리곤 뭔가 생각난 듯, 팔을 뻗어 옆자리 서랍에 연필을 넣었다. 연필이 굴러가는 소리가 작게 들렸다. 그는 힘빠진 웃음을 짓곤 작은 꽃병에 꽂힌 꽃을 바라봤다. 꽃은 시들다 못해 바싹 말랐다. 바스러진 꽃잎과 이파리가 꽃병 옆에 떨어져 자리가 지저분했다. 이제 그 자리 주인을 기억하는 사람도 없는 듯 했다. 아메나시 유이치, 그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도.
아메나시는 작년 여름, 열차에 치어 죽었다. 그것은 사고, 였다. 안전바도, 신호등도, 열차도 무엇도 고장나지 않은 채 일어난 어떤 불미스러운 사고. 그의 곁엔 누구도 없었다. 그랬기에 누구도 그의 마지막 모습을 알지 못했다. 어떤 징조도 없이 갑작스럽게 들이닥쳤기 때문에 유언이라고 할 만한 마지막 말도 없었다. 그랬기에 그 죽음은 비현실처럼 느껴졌다. 죽음을 준비하고 막을 어떤 기회도 주어지지 않았기에 그 죽음은 부당했다. 아메나시의 시간은 작년 여름에 멈췄지만 잔인하게도 내일의, 다음주의, 다음달의, 다음 해의 해는 떠올라 유우키는 고등학교 3학년이 되었다. 그 시간의 차이는 견디기 힘들었다. 언제까지고 고등학생 2학년인 채로 남을 너와, 3학년이 되고 머잖아 어른이 될 나. 그와 같은 시간을 더이상 공유할 수 없다는 사실이 아팠다. 자신의 시간에 더이상 그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괴로웠다. 그 한 해는 그 생각만으로 가득 찬 시간들이었다.
장례식은 작게 치뤘다. 가족과 가까운 친척의 사람들, 그리고 몇 안되는 이웃과 학교 친구들. 아메나시는 교우관계가 특별히 두텁고 좋았기에 혈육보다도 훨씬 많은 수의 친구들이 장례식에 방문했다. 물론 야구부원들도 마찬가지였다. 백 명이 넘는 야구부원들이 전부 온 것은 역시 아니었지만 함께 동고동락했던 3학년생들과 주전 선수들, 그리고 타카오카 감독과 오오타, 타키시마가 제각각 다른 시간에 찾아왔다. 유우키는 그 자리에 가지 않았다. 그 갑작스러운 죽음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명복을 빌 용기가 나지 않았다. 내가 여기서, 널 마지막으로 보내준다면. 그 해 겨울이 되어서야 겨우 아메나시의 집에 방문해 작게 꾸려진 제단에 인사를 올릴 수 있었다.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눈물이 나오게 된 것은, 그 무렵 아메나시가 나오는 꿈을 꾼 그 겨울밤이었다. 함께 마주앉아 숙제를 몰아서 하는, 너무 익숙했기에 사라질 것을 몰랐던 행복이었다. 웃는 얼굴은 여전히 선명한데도,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 만큼은 물속처럼 먹먹하게 들렸다. 이젠 들을 수 없는 그 목소리가 간절해서, 그는 몇 번이고 제 이름을 다시 불러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아침종이 그를 깨울 때까지 한 번도 그 목소리를 똑바로 들을 수 없었다.
정규 연습이 끝나고 자율 연습까지 끝나고 나면 이미 대부분의 학생은 하교하고 없을 때였다. 본관 복도의 불들은 거의 대부분 꺼지고 야간자율학습을 하는 몇 명의 학생들만이 남은 교실의 불만 켜져있었다. 유우키는 집에 가지 않고 다시 본관으로 돌아가 교실로 향했다. 손엔 어디서 꺾었는지 모를 초라한 들꽃이 몇 송이 들려있었다. 교실엔 아무도 남아있지 않았고 불도 꺼진 채였다. 열린 창문에서 바람이 조금씩 불어와 커튼을 흔들었다. 언뜻 밤낮도 모르고 울어대는 매미의 소리가 들렸다. 유우키는 아메나시의 책상 위 꽃병에 꽂힌 시든 꽃 대신 들고 온 들꽃을 병에 넣었다. 앉을 사람도 없는데도 의자에 쌓인 먼지도 털어내고 주변에 잔뜩 흩어진 꽃잎 조각들은 모아서 시든 꽃과 함께 쓰레기통에 버렸다. 언제부터였는지, 아니면 원래부터 이랬는지 어딘가 높낮이가 맞지 않아 책상이 삐걱거렸다. 그는 가방에서 아무 종이나 꺼내 선을 맞춰 접곤 짧은 다리 밑에 넣기 위해 몸을 숙였다. 종이를 다리 아래 넣고 일어서다 그는 서랍 속에 굴러다니는 연필 아래 색 바랜 편지를 발견했다. 편지? 서랍과 사물함 속에 들어있던 아메나시의 물건은 그가 직접 정리해서 가족에게 전달했었다. 야구부이면서도 아메나시는 일반 입시로 대학 진학을 목표로 했었다. 때문에 책상 서랍과 사물함에 교과서며, 참고서며 하는 것들이 아주 많았기에 그 중 뭔가 하나 빠트렸다고 해도 이상할 것은 없었다. 그는 편지를 서랍에서 꺼냈다. 편지 봉투는 어쩐지 불쾌한 검은색이었고, 그 아래 아메나시가 좋아하던 테루테루 보즈 스티커가 붙어있었다. 받는 사람도 보내는 사람도 없는 그런 길 잃은 편지. 그는 편지를 열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테루테루 보즈는 아메나시가 좋아하는 것이었고 그 스티커를 하라주쿠에서 사는 것을 직접 봤었다. 어떤 징조도 남기지 않고 삶에서 완벽하게 사라져버린 아메나시가 남긴, 유일한 어떤 것이라는 생각이 머리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남의 편지를 함부로 열어보는 일은 하고 싶지 않았지만 도의를 지키는 것보다도 그는 일 년만에 겨우 손에 잡은 아메나시의 마지막 흔적을 붙잡고 싶었다. 매미 소리가 점점 커졌다. 마치 그 편지를 열지 말라는, 불길한 경고처럼 들렸다. 그는 잠깐 고민하다가 조심히 스티커를 뜯어 편지를 열었다. 편지는 봉투 크기에 맞춰 두 번 접혀있었고 바른 글씨로 딱 한 줄, 일본어로 또박또박 적혀있었다. 유우키는 첫눈에 그 글씨가 누구의 것인지 알 수 있었다. 이건.
오늘 죽으러 갈 것이다. 수요일 오후 2시 21분 신주쿠 행 열차에 뛰어들거야.
아메나시의 편지.
그 후로 시간이 어떻게 흐르는지도 모르고 유우키는 어딘가 고장이 난 채 생활했다. 아침이 되면 일어났고, 등교를 하고 연습을 했지만 이전보다도 어딘가 넋이 나간 느낌이었다. 주장이 흔들리면 팀이 흔들린다. 그가 중요한 시기를 앞두고 휘청이자 팀전체에도 음울한 기운이 끼었다. 그라운드 위에서만이라도 보였던 총명함이 이젠 점점 퇴색되고 사라지는 듯 했다. 단순히 아메나시의 죽음이 사고가 아니란 걸 알아서가 아니었다. 누구도 그런 말은 하지 않았다.
그 아메나시가 자살을 했다고는.
누구도 그런 말은 하지 않았어. 유우키는 머신에서 빠르게 튀어나오는 공들을 신경질적으로 당겨쳤다. 맴맴. 매미소리가 귀에서 울렸다. 그 벌레들은 유우키를 책망하고 있었다. 그러길래 그 편지를 열지 말라고 했잖아. 유우키는 한참 야구배트를 휘두르다가, 어딘가에 배트를 던지곤 멋대로 달리기 시작했다. 누구도 유우키를 말리지 않았고 그를 걱정했던 주전 선수들 중 코미나토만이 그의 뒤를 따라 뛰기 시작했다. 아메나시 때문에 유우키가 망가진 것을 알고 있어서일까, 코미나토는 아메나시의 친한 친구로서 그의 변화에 어떤 책임감을 느끼고 있었다. 아메나시라면 유우키가 이렇게 망가지는 걸 바라지 않았을거야. 그는 한동안 유우키가 하고싶은대로 하게 놔뒀지만, 가을이 다 지나도록 정신을 못 차리는 유우키를 잡아 끌고 아메나시의 집으로 갔었다. 그것만이 자신을 훌륭한 2루수로 만들고 세상을 떠난 아메나시에게 보답하는 것이라고. 그는 그렇게 생각했었다.
"자꾸 그렇게 얼빠져 있으면 아무리 너라도 주전 밀릴걸. 아 쨩이 그런 걸 바라겠어?"
"코미나토. 넌 알고 있었어?"
"뭘?"
"유이는 전철에 치여서 죽은 게 아니야."
"뭐?"
"유이 스스로 신주쿠 행 전철에 뛰어든거야."
코미나토는 잠시 멍하니 달리는 유우키를 쳐다봤다. 언젠가 저 등이 보기만 해도 믿음직스럽다고, 그렇게 생각했는데. 유우키는 얼마 안 가 트랙 위에 멈췄다. 코미나토는 그의 앞까지 조금 더 뛰어가 따라 섰다. 그 역시 유우키 못지 않게 적잖이 충격을 받았지만, 그것이 이렇게까지 그가 망가질 이유라곤 생각되지 않았다. 아메나시가 자살을 했든 사고로 죽었든 아메나시가 없는 일상은 이미 코미나토에겐 익숙했다. 수비를 서는 자신을 어딘가에서 지켜보다 경기가 끝나면 조용히 다가와 정성어린 조언을 건네는 사람이 없어도, 밤이 늦도록 쿠라모치와 한참 격투게임을 하는 걸 구경하는 일상이 없어져도, 교사의 어려운 질문에 대답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도, 녹초가 되어 돌아오는 자신에게 포도맛 음료수를 건네는 사람이 없어도 아침이 되면 해가 떴고 밤이 되면 달이 떴다. 그 점이 가끔은 소름끼치리만큼 싫었지만 그 부재로 서서히 무너져가는 유우키를 보면 차라리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 것도 사실이었다. 그는 아메나시의 장례식을 나오면서 그가 없는 생활에 무던해지는 대신, 아메나시의 몫까지 그라운드 위에 서겠다고. 그렇게 정했다. 살아 있는 사람은 앞으로 나아갈 수 밖에 없잖아. 그렇게 말하며 아메나시의 집으로 유우키를 밀어넣은 것도 코미나토였다.
"…그래서? 아 쨩이 어떻게 죽었든 결과는 똑같잖아."
"유이가 사고로 죽었다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어. 하지만 자살이라면 말이 다르잖아. 난……!"
매미 소리가 여전히 우렁찼다. 그 소리는 유우키에겐 그렇게 들렸다. 넌 아무것도 막지 못했다고.
오전부터 비가 쏟아지더니 오후엔 날이 개어 오히려 화창했다. 비가 오는 일은 별로 없었는데, 함께 가방에 나눠 걸었던 테루테루 보즈가 너덜너덜해졌기 때문일까. 날이 개자마자 매미들은 기다렸다는 듯 울기 시작했다. 유우키는 멋대로 수요일 연습을 빠졌다. 그가 말도 없이 연습을 빠진 것은 3년 동안 처음이었다. 전화기에 전화나 문자가 몇 통씩 걸려오는 것 같았지만 그는 무시했다. 지금 전화를 받아서 무엇하랴. 그는 야구부의 특권으로 오전 수업 후에 하교하고 열차가 지나가는 선로가 있는 길로 돌아갔다. 나중에 생각하면 그날은 특별한 무언가에 홀린 것 같았다. 집으로 갔든, 어디로 갔든 구태여 돌아서 가는 길로 갈 이유가 없었으니까. 지름길이 아니라는 사실을 제외해도 유우키는 그 일 년 간 그 길만큼은 피해서 다녔었다. 어떤 일이 있어도, 그 근처로는 가고 싶지 않았다. 아메나시를 죽인 그 열차가 달리는 길로는. 마침 멀리서 오후 2시 신주쿠 행 열차가 지나가고 있었다. 다음 열차는 오후 2시 21분. 그는 어째서인지 열차 시간을 알고 있었다. 열차가 빠르게 지나가고, 안전바가 올라갔다. 그리고 유우키는 그 선로 위를 지나가는 사람들 사이에서 보여선 안되는 사람을 봤다. 날이 갠 새파란 하늘 아래 반짝이는 옅은 노란색 머리와, 곡식처럼 반짝이는 금색 눈. 짧은 하복 블라우스에 파란색 리본, 밑단을 줄인 스커트. 짧은 발목 양말과 단정한 구두. 아메나시 유이치였다.
"…유이."
아, 테츠. 아메나시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 빙글 돌며 그를 바라봤다. 날이 갠 하늘처럼 맑고 선명한 목소리였다. 신주쿠 행 오후 2시 21분 열차가 지나가는 선로 위에 선 아메나시는 넋을 놓고 자신을 보는 유우키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아메나시는 어딘가 그가 이곳에 올 것을 이미 알고 있던 것처럼 보였다. 사람들은 그를 보지 못하는지 그저 스쳐 지나갈 뿐이었다. 사람들이 전부 반대편으로 건너가자 안전바는 천천히 내려갔고 아메나시는 여전히 그 선로 위에 서있었다.
"…왜 거기 서있는거야. 위험하잖아! 빨리 이쪽으로 건너 와."
"난 거기론 못 가. 여기로 올래? 테츠."
왜 그런 위험한 짓을… 아메나시는 이쪽으로 건너오라며 그에게 손짓했다. 매미 소리가 온 머리에 진동했다. 마치 온 도쿄의 매미들이 그의 등을 떠밀고 있는 것 같았다. 어서 저쪽으로 가라고. 유우키는 천천히 걸어 안전바 너머로 건너갔다. 그는 아메나시의 앞에 섰다. 눈이 마구 흔들리고 있었다. 그 손은 파르르 떨리며 조심스럽게 상대방의 머리카락을 쓸었다. 그가 사라진 지난 일 년 간 하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수 십 번, 수 백 번, 수 천 번이고 후회했지만 막상 눈 앞에 그가 나타나자 무슨 말을 해야할지 머리가 새하얘졌다. 뭐라고 전하면 좋을까. 네가 없는 동안 이곳에 많은 일이 있었다고. 난 한순간도 널 잊지 못하고 내 일상을 잃었다고. 네가 없어서 어떤 일에도 집중할 수 없다고. 나는, 너는……. 어렵사리 입술 새로 나온 것은 김 샌 시시한 말이었다.
"…보고싶었어. 유이."
"응."
그 말까지도 예상했던 것인지, 아메나시는 유우키의 뺨을 마주 쓸며 웃었다. 불쌍한 테츠. 그러나 유우키가 갑자기 자신을 강하게 끌어안은 것까진 예상치 못한 것이어서, 아메나시는 그 속에 꽉 붙잡힌 채 터질 듯 달아오른 얼굴을 그 품 속에 숨겼다.
"왜… 왜. 왜 그랬던거야."
"……."
아메나시는 유우키를 마주 안고, 등을 토닥였다. 말하면 너는 이해해줄까. 내 자살을. 아메나시는 가만 선 채 그의 어깨에 이마를 톡 기대곤, 조용히 웅얼였다. 매미가 그렇게도 시끄럽게 우는데 어째서인지 그 목소리 만큼은 아주 선명하게 들렸다.
"난 여기서 널 계속 기다렸어."
내가 죽은 이유를 알아달라든지 하는 그런 말 따윈 안 해. 너는 내 자살을 이해하지도 못 할거고, 이해를 바라지도 않아. 난 나의 삶을 내 스스로 마무리 한 뿐이야. …조금, 올바르지 못한 방법으로. 하지만 넌 분명 자책하겠지. 넌 책임감 덩어리니까. 아메나시는 유우키를 토닥이던 손을 거두고 그를 천천히 밀어냈다. 그것은 거부의 손길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아주 다정했다. 아메나시는 내리쬐는 여름의 태양보다도 따듯하게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신호등에 초록불이 켜졌다. 매미 울음 소리가 일제히 멈췄다. 멀리서 열차가 달려오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난 여기서 널 계속 기다렸어. 이 말을 전하려고.
"이제 날 놓아도 돼, 테츠."
아메나시는 말을 마치곤, 맞은편으로 달려오는 열차를 보며 유우키를 안고 철로 반대편으로 뛰어들었다. 시멘트 바닥의 열기를 느낄 새도 없이 곧바로 지나간 열차 소리가 섬찟했다. 그 소리는 아메나시의 웃음소리와 섞여 어딘가 노이즈 낀 듯 불쾌하고 소름끼쳤다. 안전바를 넘어가는 순간 아메나시는 여름의 환상처럼 파삭 부서져 사라졌다. 그제야 주위의 소리가 들렸다. 열차가 지나고 안전바가 올라가자 반대편에 있던 사람들이 몰려와 유우키를 일으켰다. 매미 소리는 여전히 온 머리에 울릴 정도로 지독했다. 타오르는 태양이 눈이 부셨다. 눈물이 날 정도로, 여름의 선로 위는 여전히 화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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