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살(2)

DREAMING/LIMBUS COMPANY2023. 6. 26. 05:37

   원인을 규명하지 못하더라도 이미 일어난 일은 어쩔 수 없었다. 해결할 방법은 차차 떠올리기로 하고 우선은 돌연 나타난 이 아이를 어떻게 할지 정해야 했다. 수감자들은 아이에게 숙제처럼 스도쿠 퍼즐을 안겨주곤 우르르 바깥으로 나와 떠들기 시작했다.

 

   "근처 괜찮은 보호소 같은 게 없나?"

   "그냥 데리고 다니는 게 낫지 않겠어?"

   "아니되오. 이 버스가 가는 길은 너무나 잔혹한 여행이 될 것이오."

   "어디 아무데나 내려줬다가 그 여자가 다시 돌아오면, 그땐 어쩔거냐?"

   "그럼 돌아올 때까지 우리도 휴가를 얻는 것은 어떻소!?"

 

   여러가지 의견이 난무하는 가운데, 베르길리우스가 불필요한 논쟁을 끊으려는 듯 책을 덮으며 말했다.

   

   "그 분은 본사의 허가가 없으면 어떤 경우에도 이 버스에서 나갈 수 없게 되어 있다."

   "…저렇게 어린 아해요. 시체가 날아와 차체를 뒤흔들고 피냄새가 환기 될 틈 없이 몰아치는 버스에 어린 아이를 태우고 가겠다는 말이오?"

   "어떤 경우에도… 라고 말한 것 같은데, 이상."

   "천 년 후의 제 자신이 결정한 일을 책임지기에는 너무 어린 나이요."

 

   이상은 드물게 물러서지 않고 맞섰다. 평소였다면 타인과 눈을 맞추는 일도 없었을텐데, 어떤 의지를 보이겠다는 것인지 옅게 빛나는 눈동자가 똑바로 상대를 보고 있었다.

 

   "우리는 유치원도 아니고 보육원은 더더욱 아니다. 언제부터 우리가 그런……"

   "알겠어요."

 

   언제 온 것인지, 복도로 가는 문치에 아이가 서 있었다. 이상은 제 이야기를 들었을까 흠칫 놀랐지만, 이내 표정을 지우고 아이에게 다가가 부드럽게 타일렀다.

 

   "밖으로 나오지 말라고 하지 않았소."

   "하지만 당신의 설명은 너무 어려워서 어떻게 하는지 모르겠는걸요."

 

   아이는 손에 들고 있던 풀다 만 스도쿠 퍼즐을 이상에게 휙 던져버리곤 버스 좌석 사이로 난 통로로 걸어갔다. 당찬 눈매는 저보다 훨씬 큰 남자를 똑바로 노려보고 있었다. 어깨까지도 채 오지 않는 짧은 단발, 조그마한 몸과 새하얀 피부. 모든 것이 그와 달랐지만 작열하는 태양과도 닮은 눈동자만큼은 똑같았다.

 

   "전 내리지 않아도 괜찮아요. 해결될 때까지 여기에 있겠어요. 그게 어른이라는 거잖아요?"

   "그렇다는군."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게 무슨…"

   "뭐라고요?"

 

   아이는 다시 말해보라는 듯 히스클리프를 째려봤다.

 

   "당신도 딱히 피가 마른 것 같진 않은데요?"

   "뭐야?! 이 꼬맹이가, 진짜!"

   "우와아이에게 폭력을 휘두르려고 하다니, 최악이네요. 히스클리프 씨."

   "오냐. 둘 다 사이좋게 보내주지."

 

   아이의 대답으로 논쟁은 끝나고 버스는 순식간에 평소의 소란으로 뒤덮였다. 베르길리우스는 카론에게 다시 출발 지시를 내렸고 버스는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규칙 때문에 서로 머리채를 쥐어 뜯고 있는 이스마엘과 히스클리프를 말리는 것은 그레고르와 싱클레어였고 익숙한 소란을 신경쓰지 않는 나머지 수감자들은 빠르게 제 자리에 가 착석했다. 비는 자리를 찾아 버스 안을 두리번 거리는 아이에게 먼저 말을 건 것은 단테였다.

 

   <앉을 자리가 없으면 내가… 아, 내 말이 안 들리지 참.>

   "이런 꼬맹이 하나 때문에 관리자 님이 서서 가신다니, 말도 안 됩니다! 관리자 님을 위해, 이 오티스가 발 아프게 서서 가도록 하겠습니다."

   <….>

   "저도 그쪽 자리 앉기 싫거든요?"

   "아까부터 생각했지만 참 건방진 애송이군. 베풀어주는 배려에 감사할 줄도 모르다니."

   "아유, 참! 그만들 해. 자기, 내 무릎이라도 괜찮으면 같이 앉을까?"

   "…좋아요."

 

   로지온은 작은 아이를 안아 들고 제 무릎에 앉혔다. 아이는 만족한 듯 더 이상 불평하지 않고 스쳐지나가는 창 밖 경치를 내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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