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살(1)
DREAMING/LIMBUS COMPANY2023. 6. 25. 06:14연일 내리던 비가 그치고 맑게 갠 아침이었다. 구름이 한 점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하늘이 새파래도 그들의 방으론 햇빛이 비추지 않았으니 맑은 날이라고 한들 일어나는 기분이 상쾌하진 않았겠지만. 함께 잠든 밤이었고 먼저 일어난 것은 이상이었다. ■■가 잠에서 찌뿌둥하게 깨면 인기척에 덩달아 일어나는 것이 보통이었는데 간밤은 꿈자리가 온화했는지 깊게 잠이 든 듯 했다. 그는 별다른 일이 없다면 항상 6시에 일어났고 멀거니 보이는 시계도 딱 맞춰 그 시간이었다. 이상은 모처럼 푹 자고 있는 ■■를 방해하고 싶지 않아 바로 일어나지 않고 침대에 머무르기로 했다. 잠시 얻은 여유를 잠든 그를 가만 눈에 새기는 것에 쓰고 싶었다. 그러나 그런 바람도 오래 가지 못했다. 옆에 누워 있던 건 그가 아닌, 아니, 그가 맞긴 했지만…… 그 위화감은 뭐라고 표현하면 좋을까. 머리는 한참이나 짧았고 볼선은 둥글다 못해 동그랬다. 원래도 길게 늘어졌던 옷은 팔도 다리도 완전히 삼킨 채 늘어졌고 그 끝으로 풀린 붕대가 어지럽게 흩어졌다. 누가 봐도 영락 없는 어린아이였다. 흠칫 놀란 그는 갑자기 나타난 낯선 소녀에게서 멀어지다가 그만 침대 아래로 굴러 떨어졌다.
아이는 이상이 떨어지면서 나는 소음에 눈을 떴고, 잠에 취한 목소리로 아침으로 30분 뒤에 연어를 넣은 샌드위치를 먹겠다느니 하는 말을 웅얼였다. 이상은 아침을 주문하고 다시 돌아 눕는 아이를 얼이 빠진 채 쳐다보다가, 조심스럽게 불렀다.
"저… 미라 양?"
"자꾸 깨우지 말라니까…"
깨우는 게 싫었는지 아이는 볼멘소리를 내며 일어났다. 그리고 눈이 마주친 순간에, 제가 알던 사람이 아닌 걸 알았는지 꼬리를 세운 고양이처럼 눈을 동그랗게 뜨고 펄쩍 뛰었다.
"누구야!? 여기가 어딘 줄 알고,"
"여긴 내 방이오…"
"당장 나가요!"
변명할 틈도 없이 베개가 이상의 얼굴로 날아갔다.
하여, 버스는 아침부터 소란이 일었다. 하룻밤 사이 나타난 아이는 당연하게도 그들이 원래 알고 있던 ■■와는 달랐다. 수감자들을 몰랐음은 물론 시간 여행에 대한 기억도 없었다. 자신이 시간 여행자라는 사실 역시 알지 못했고 자신이 버스에 나타난 이유에 대해서도 아는 게 없었다. 버스의 두 천재가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도 마땅히 들어 맞는 답이 없어서, 아직 알려지지 않은 특이점이나 뒤틀림 현상의 일부는 아닐까 짐작했을 뿐이었다.
"어린 시절의 그녀에 대해 아는 것이 있나요?"
"음, 학생 때는 성적이 좋지 못했다고 들었소."
"그건 지금도 그런 거 아냐?"
"으, 음……."
그는 거듭된 시간 여행에서 원래의 자신에게서 점점 멀어졌다. 다른 세계선에서는 그를 아는 사람이 없었으니 돌아갈 집도 없었고 반겨 줄 가족도 없었다. 시간이 쌓일수록 자기자신에 대한 기억은 옅어졌고 지금에 이르러서는 가족의 얼굴이나 이름 한 자 조차도 기억나지 않게 되었다. 제 자신에 대해 할 말이 없었으니 항상 대화는 이상을 중심으로 흘러갔다. 그가 오늘 먹은 것과 한 일, 느끼고 있는 기분, 하고 있는 생각, 숱한 과거와 지금, 그리고 다가올 미래. 지겹도록 봤을텐데 또 뭐가 궁금한지 이상에 대한 것을 끊임없이 물었지만 제 이야기를 떠드는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래서 붙어 지낸 기간이 짧지 않은데도 그에 대해선 아는 게 거의 없었다. 아이는 저를 바로 앞에 두고 수감자들끼리 떠드는 모습을 보고 새침하게 대답했다.
"사람을 앞에 두고 실례네요!"
아이는 생각보다 당돌했다. 지금처럼 부드럽고 살가운 성미도 아니었고 아이답게 알 수 없는 상황이나 낯선 이들을 보고 눈물을 터트리지도 않았다. 버릇 없는 건 아니었지만 건방진 구석이 있었고 철없진 않았지만 의젓하지도 않았다. 산만하진 않았지만 얌전한 것도 아니었다. 이상이 쩔쩔매고 파우스트가 생각에 잠긴 사이 로지온과 그레고르가 빵이 가득 든 종이가방과 함께 들어왔다.
"기다렸지? 자기들 아침도 사왔어."
"연어 샌드위치는 없던데… 대신 에그베이컨으로 사왔어."
아이는 주문한 연어 샌드위치가 없다는 것에 입이 삐죽 튀어나왔다.
"베이컨 싫어요."
"…허면 단팥빵은 어떻소. 본인의 것이오만……"
"흥!"
"……."
왜인지 미움받는 이상 대신 로지온이 아이를 달랬다. 가슴 속에 비수가 박힌 이상에게 위로를 건네는 것은 싱클레어였다.
"생각보다 지금의 미라 씨와는 성격이 많이 다르네요…."
"단팥빵이 그리 나쁜 것이오……?"
"아니, 그게…"
"듣지 마시오… 그대는 최고의 단팥빵이니……."
최고의 단팥빵은 결국 이상의 몫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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