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심

DREAMING/SLAMDUNK2023. 3. 10. 23:28

   하교시간을 알리는 종이 울렸다. 학생들은 저마다 뭉쳐 부활동을 가거나 샛길로 새자며 저들끼리 떠들었다. 겉으로 보기엔 평소와 같은 떠들석한 방과후였지만 어딘가 작위적인 부분이 있었다. 그들은 일부러인 양 소리 높여 떠들며 그 자리에서 벗어나기 위해 필사적이었다. 학생들은 평소보다 빠르게 사라졌다. 순식간에 썰렁해진 1학년 교실엔 책가방 대신 다 헤진 기타 가방을 맨 소녀만이 남았다.
   소녀는 모두가 사라질 때까지 가만 서 있었다. 마지막 육상부 무리가 발소리를 내며 뛰어가고 나서야 소녀는 교실 뒤를 가로질러 밖으로 나섰다. 차분하게 걷는 발끝에 언젠가 사물함에 넣어뒀던 것 같은 노트가 채였다. 노트가 순간적으로 펼쳐지며 안에 꽂아 뒀던 악보들이 아무렇게나 흩어졌다. 발에 차인 노트는 옆으로 굴러가 끊어진 헤드폰에 부딪히고 나서야 멈췄다. 왜인지 지저분해진 체육복도 함께였다. 소녀의 이름이 걸린 사물함 문은 덜렁거리며 열린 채였다. 아무것도 없는 사물함엔 찢은 노트 낱장이 전부였다.

   ‘방과후, 옥상’

   두꺼운 펜으로 아무렇게나 휘갈긴 글씨였다. 치사하고 더러운 수법이었지만 소녀는 기어코 계단을 올라 옥상 문을 열었다. 문을 열자마자 비가 안쪽으로 쏟아졌다. 지금부터 깨지 못할 악몽이 시작되더라도 소녀는 두렵지 않았다. 어쨌든, 보통내기가 아니었다. 한솔이라는 소녀는.

   옥상엔 이영걸이 있었다. 곁엔 항상 함께 몰려다니는 패거리가 있었다. 예상했던 것처럼 정대만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한솔이 옥상에 들어오자마자 철문은 쿵, 소리를 내며 닫혔다. 뒤에서 거세게 등을 떠미는 바람에 한쪽 어깨로만 메고 있던 기타 가방이 떨어졌다. 가방 앞주머니에 들어 있던 자질구레한 물건들이 앞으로 쏟아졌다. 이영걸을 쳐다보는 눈길이 매서웠다. 한솔은 몸을 숙여 가방을 다시 집었다. 아니, 집으려고 했다. 몸을 숙인 그 순간에 등을 밀려 앞으로 고꾸라졌다. 옥상 바닥에 잔뜩 고인 물웅덩이 위로 쓰러진 한솔 앞으로 이영걸이 다가왔다. 위에서 아래로, 쓰러진 사람을 깔보는 듯한 위협적인 그림자가 졌다. 뺨에 차가운 물이 닿고 나서야 정신이 들었다. 걸어 들어온 이곳은 지독한 지옥이었다. 이 지옥으로 걸어들어온 이상 나갈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문을 열기 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기어코 구정물을 뒤집어 쓰고서야 실감이 났다.

   “엎어진 꼴이 잘 어울리는데.”
   “…….”

   싸구려 도발에 한솔은 대답하지 않고 일어났다. 부딪힌 곳이 쓰라리고 아팠지만 지금부터 시작될 일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옆으로 흘린 시선에 그새 다 젖어버린 악보나, 바람에 멀리 날아간 기타 피크, 여분의 기타줄 같은 게 보였다. 똑바로 선 한솔은 차갑게 내려보는 시선을 손으로 후려쳤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이게……!”

   이영걸이 맞자 마자 그들은 사방에서 한솔에게 달려들었다. 한솔은 팔꿈치로 뒤에서 다가오는 리젠트 머리를 쳐내고, 떨어진 기타 가방을 주워 앞으로 달려든 안경에게 전신을 부딪혔다. 묵직한 기타에 맞은 그가 뒤로 쓰러져 구르자, 이영걸은 그 손에서 가방을 다시 빼앗곤 옥상 벽으로 던졌다. 철벽에 부딪힌 가방에서 쾅 소리가 났다. 한솔은 그 소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았다. 어딘가가 부서졌을지도 몰라. 벽에 떨어진 가방은 바닥에서 몇 번 튕겨 힘없이 떨어졌다. 한순간 멍해진 한솔은 주위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도 모르고 멍청하게 기타 가방을 쳐다봤다. 시선이 가방을 향한 순간에, 이영걸은 되돌려주기라도 하듯 한솔의 뺨을 거세게 때렸다.

   구타는 한참이고 이어졌다. 처음엔 반격을 하는 것도 같았지만, 기타 가방이 날아간 후부터 한솔은 저항없이 얻어맞을 뿐이었다. 패는 게 물렸는지 분이 풀렸는지 그들은 해가 질 쯤 비 내리는 옥상에 엎어진 한솔을 내버려두고 사라졌다. 구타가 멈추자 한솔은 부들부들 떨며 몸을 억지로 일으켰다. 이곳저곳이 말도 못할 정도로 아팠다. 일어나기가 힘들어서 한솔은 엉금엉금 기어 가 푹 젖어버린 검은 가방을 안았다. 가방을 안은 그 순간에 기타 넥이 부러졌음을 알았다. 그제서야 눈물이 나왔다. 한 번 터진 눈물은 그칠 줄 모르고 쏟아졌다. 한참 만에 우는 법을 다시 떠올린 소녀는 빗속에서 홀로 서럽게 울었다. 소리 내 울지 못하는 입에서는 서글픈 숨만이 터져나왔다. 얻어맞은 분노 위로 그저 슬픔만이 한없이 밀려왔다. 한솔은 그렇게 한참을 울었다. 옥상 문이 다시 열릴 때까지.

   “솔아……!”

   아무도 오지 않을 터였던 옥상 문을 열고 들어온 것은 정대만이었다. 흐르는 땀이나 거친 숨에서 다급하게 뛰어온 것을 알았다. 실로 오랜만이었다. 그가 그 이름을 부른 것은.

   꼭 그랬다. 한솔은 정대만이 불량한 행태로 누군가를 괴롭힐 때면 그 자리에 나타나 얻어맞는 후배나 동급생을 구하곤 했다. 한솔이 나타나면 정대만은 그만둘 수 밖에 없었다. 마치 아는 것만 같았다. 정대만이 자신에게 손 댈 수 없는 걸. 한솔은 말 없이 나타나서 구타 현장을 당당히 가로질러 바닥에 쓰러진 누군가에게 손을 내밀어 일으켰다. 누군가가 달려들려고 하면 그 눈을 부릅 뜨고 정대만을 똑바로 쳐다보곤 했다. 그렇게 말하는 것만 같았다. 할 수 있으면 해 보라고. 그럼 정대만은 어쩔 수 없이 그만 하라고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럼, 한솔은 아무 말 없이 이 일에 휘말린 불행한 누군가를 데리곤 사라졌다. 그에게 눈길도 주지 않곤.
   이영걸은 항상 정대만에게 그 이유를 물었지만 때마다 성질을 부릴 뿐 그는 말해주지 않았다. 그야, 말할 순 없었다. 스스로 입 밖으로 내면 인정하는 것이나 다름 없었다. 지독한 절망감에 가장 소중한 친구에게 크게 상처를 줬다고. 그리고 그 이상으로 그 스스로가 상처받았다고. 그 상처는 누가 준 게 아니라 스스로 입힌 것이었다. 그런 비참한 꼴을 순순히 인정할 순 없었다. 패거리의 다른 녀석들도 적잖이 불만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 상처 위에 더 이상 흉을 줄 순 없었으니까.
   언젠가는 이런 일이 일어날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에겐 막연한 기대가 있었다. 언젠가는 이 불편한 상태를 청산하고 과거로 돌아갈 수 있을 거라는. 그에겐 이상한 확신이 있었다. 한솔이라면 용서해 줄 것이라고. 돌아갈 수 있게 해 줄 것이라고. 한솔은 유일하게 남은 돌아갈 곳이었다. 이 방황을 멋대로 즐기곤 마음이 내키면 다시 돌아갈 것이라고. 그래서 언젠가부터 그는 일부러라도 아무나 붙잡고 괴롭히기 시작했다. 마음에 안 든다는 이유만으로 누군가를 괴롭히는 시덥잖은 짓이라도 하면, 네가 나타날테니까. 그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한솔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꼭 나타났다. 그럼 그게 또 싫은 것처럼 인상을 구기다가도 내심 아직 이어져 있음에 기뻐하는 자신이 있었다. 그러니까 언젠가는 다시 너와 나란히 걸을 수 있을 거라고. 그렇게 되면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그렇게 믿으며 귀찮은 일을 내팽개쳤다.

   이것은 그런 안일함에 대한 벌일까. 그 벌을 받은 건 한솔이었다. 피멍으로 얼룩진 몸은 오래도록 거세게 쏟아진 비에 젖어 있었다. 항상 소중히 여기던 다 헤진 가방을 품에 껴안은 채. 문이 열리는 소리에도 한솔은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그저 기타 가방에 얼굴을 묻은 채 떨 뿐이었다. 그 얼굴을 본 것은 아니었지만, 정대만은 그가 울고 있음을 알았다. 마음이 무너질 것만 같아서, 정대만은 결국 그 이름을 부르고 말았다.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는 불안에 떨렸다. 그는 불안의 이유를 어렴풋이 알 것만 같았다. 오랫동안 썩어만 갔던 이 관계가 끊어지고 있었다. 어쩔 도리도 없이 빠르게.
   정대만은 빗속으로 뛰어들어 쓰러지듯 한솔의 앞에 주저앉았다. 목소리보다도 손이 떨려왔다. 그는 아주 조심스럽게 손을 살짝 뻗었다. 그리고 어깨에 채 닿기도 전에 한솔은 매섭게 정대만의 손을 쳐냈다. 그리고 벌떡 일어나더니, 품에 안았던 가방을 바닥에 힘껏 팽개치곤 정대만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경멸에 찬 눈에선 눈물이 주륵 떨어지고 있었다. 온몸이 얼룩질 정도로 맞은 몸에서 무슨 힘이 솟은건지, 한솔은 비틀비틀 걸어 열린 옥상 문 너머로 사라졌다. 옥상 문을 망연히 바라보던 정대만은 한솔이 완전히 사라지고 나서야 그 가방을 집었다. 지퍼를 북 당겨 열자 넥이 완전히 부러진 기타가 보였다. 한솔이 항상 들고 다니는 그 기타였다. 낡을 대로 낡아서 바꾸는 게 어떻냐고 해도 한 번도 바꾸는 법이 없었던 그 통기타였다. 아주 어렸을 때 그와 함께 가서 샀던, 한솔의 유일한 기타. 그는 그제서야 그 눈물의 이유를 알았다. 그는 공포나 아픔 따위에 눈물 흘린 게 아니었다. 그가 울었던 이유는……

   서로에게 깊게 상처를 준 날 이후로 시간이 많이 흘렀다.
   정대만은 불량배를 그만두고 농구부로 돌아갔다. 삭발은 그런 의지의 표명이었다. 그의 일상은 느리지만, 확실하게 하나씩 돌아왔다. 하지만 돌아오지 않는 것이 딱 하나 있었다. 그의 삶을 가장 많이 지탱했던 한솔과의 관계는 폭우를 맞은 그대로였다. 한솔이 일부러 그를 피해다닌 것은 아니었다. 그저 정대만이 그 주변으로 가지 못하는 것 뿐이었다. 2학년 교실 근처엔 실수로라도 가지 않았다. 어쩌다 가야 할 일이 생기면 다른 사람에게 부탁하거나 정 가야 한다면 용건만 마치고 바로 사라졌다. 정말로 우연히 한솔을 보기라도 하면 도망치기 바빴다. 어떻게든 눈에 띄지 않으려고 필사적이었다. 어차피 소문은 빨리 퍼졌고 송태섭이 2학년이기에 한솔이 모를 리도 없었지만 당사자인 제가 그 앞에 나타나는 것만큼은 사양이었다. 농구부에 정대만이 돌아갔다는 사실 자체가 한솔에겐 상처가 될 것 같았다. 절망한 정대만에게 끝까지 농구공을 내밀었던 손을 쳐낸 건 다름 아닌 그 자신이었으니까. 그렇게 지독하게 굴어놓곤 이제와서 농구를 다시 시작했다는 게 한솔에겐 어처구니 없는 소식이었겠지. 꼭 그것만은 아니었다. 생각해보면 딱히 한솔에게 좋은 기억을 준 적은 없었다. 누구보다 아끼고 사랑했는데 그것을 보여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언제나 인상을 구긴 채로 노려보고 쳐내고, 소리치고 상처 줄 뿐이었다. 그러면서 비겁하게 속에 숨겨놓은 마음을 알아채 주기만을 바랐다. 아마 난 너에게 최악으로 남았겠지. 그러니 적어도 다신 그 앞에 나타나지 않으려 했다. 자신이 나타나면 분명 그날이 떠오를 것이다. 억지로 불량 학생에게 끌려가 린치 당한 끔찍한 기억이.

   그러나 동시에 그에겐 사무치는 그리움이 있었다. 단 한 번이라도 좋으니 다시 만나고 싶었다. 하다 못해 마지막 인사라도 제대로 하고 싶었다. 욕심은 나날이 커져갔다. 때론 다시 헛된 꿈을 꾸기도 했다. 다시 네게 인사를 건네면, 나를 봐주진 않을까. 그렇게 하루 이틀이 쌓여가면 언젠가 다시 같이 등교하는 그런 날이 오진 않을까. 일상이 돌아오면 돌아올수록 빈 자리에 대한 허전함은 커져갔다. 변한 자신을 한 번이라도 봐주길 바랐다. 용서를 바라진 않았지만 제대로 사과하고 싶었다. 매일 밤 침대 옆에 세워 둔 부러진 기타를 볼 때마다 그는 전하지 못한 말을 달싹였다.
   한참 나중에 그는 동네에 있는 악기점을 돌아다니며 기타 수리를 의뢰했다. 행여라도 한솔을 마주칠까 용건도 없는 사람들을 함께 데려가길 일쑤였다. 대부분은 악기를 할 줄도 모르면서 이런 델 왜 오냐고 꿍얼거렸지만 결국엔 따라와주었다. 그러나 어딜 가더라도 모델이 너무 낡았고 손상이 심하니 폐기를 권하는 말만 돌아왔다. 추억이 있는 기타라고 설명해도 어쩔 수 없단 말만 돌아왔다. 결국 그는 집으로 부러진 기타를 들고 와서, 혼자 고치기 시작했다. 고친다고 해봤자 그가 할 수 있는 건 접착제나 테이프 따위로 이어 붙이는 것 밖에 없었다. 아무리 애를 써도 어설프게 붙인 기타는 다시 꺾어지기 일쑤였다.
   그렇게라도 고친 기타를 막상 다시 들고 나가더라도, 한솔을 찾아갈 용기가 나지 않았다. 다시 간다고 해도 그가 바라는 일은 아마 일어나지 않을테다. 욕이라도 듣지 않으면 다행이었다. 기어이 완전히 끊어지고 마는 것이, 그리하여 더 이상은 얄팍한 기대조차도 하지 못하는 게 두려워서 그는 공연장 앞을 서성이기만 했다.



   결심한 날은, 그가 복귀하고서 처음으로 경기가 잡힌 때였다. 그는 경기 전날에 기어이 집으로 돌아가는 한솔의 앞을 막아섰다. 교실 앞까지 갈 용기도 없어서, 교문을 나서는 그 앞을 막은 것이 다였다. 길이 막히자 한솔은 저를 막은 사람을 올려다보았다. 그 눈엔 놀라움도 없었고, 기쁨도 분노도 없었다. 몇 년 째 생기를 잃고 말라버린 그대로였다. 그것이 못내 미안해서, 정대만은 눈을 옆으로 돌리고 말았다. 그러면서도 그는 등에 기어이 가지고 온 기타 가방을 내밀었다. 입에선 더듬더듬, 몇 번이고 연습한 말과는 전혀 다른 어벙한 말들만 두서없이 튀어나왔다.

   “기타, 고치려고 해봤는데… 파손이 심해서, 아. 아니… 오래된 모델이라 안 된대. 그냥 어떻게 붙이기라도 해봤는데… 알잖아, 그런 재주는 별로 없는 거. 그래서… 그… 일단 돌려주고라도 싶었어.”
   “…….”

   그는 그제서야 힐긋, 상대방의 얼굴을 쳐다봤다. 당연하지만 시간이 오래 지나서 멍이나 상처따윈 나은 후였다. 아주 오랜만에 마주 본 한솔은 이전과는 많이 달랐다. 머리도 길었고 항상 고요하지만 생기가 넘쳤던 눈은 죽은 것 보다도 탁했고 목소리 없이도 많은 걸 말했던 입은 완전히 꾹 다물어진지 오래였다. 바짝 말라버린 것은 겉모습만이 아니었다. 마음이 무너질 것만 같아도 정대만은 끝까지 용기를 쥐어짜냈다. 몇 년 동안이나 묻고 싶었던 단 한 마디였다.

   “상처… 괜찮아?”

   그것은 꼭 비오는 날의 일만이 아니었다. 그가 이제까지 줬던 많은 아픔을 이르는 단 하나의 말이었다. 무대가 아닌 곳에선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 한솔에게 무언가 대답을 기대한 것은 아니었지만, 역시 한솔은 아무 말이 없었다. 그저 건네 받은 기타 가방을 열어서, 그 안에 든 그리운 악기를 흘긋 볼 뿐이었다. 접착제로 붙이고도 그 위에 테이프를 감은 게 보였다. 언뜻, 머리를 벅벅 긁으면서도 어떻게든 붙여보려고 안간힘을 쓰는 모습이 그려졌다. 그것이 서글프게 느껴졌다.

   “…….”
   “미, 미안해. 괜찮을 리가 없겠지. 아니… 나는……”

   어설픈 사과가 기어코 튀어나갔다. 정리하지도 못한 말이 우수수 떨어질 것만 같아서, 그는 말을 멈췄다. 심장이 요동치고 입이 마구 달싹였다. 감정이 물밀듯이 파도쳐 목끝까지 올라왔다. 하지만 차마 쏟아낼 순 없었다. 분명 너는 이 이상의 대화를 원하지 않을테지. 그저 기타를 돌려준다는 명분으로 말을 걸었으니, 이 이상 뭔갈 전할 순 없었다. 무언갈 전하는 것 마저도 너에겐 끔찍할거야. 알고 있었다. 그는 이 모든 게 사실은 바라면 안됐을 욕심임을 인정했다. 그래도 그는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 욕심을 냈다. 그가 낼 수 있는 가장 큰 욕심이었다.

   “다음 경기가… 잡혔어.”

   네가 올 리가 없는 걸 알아. 그래도,

   “보러 올래?”


   네가 보러 왔으면 좋겠어.


   그것이 처음으로 보여준, 정대만의 진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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