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회
DREAMING/FF142022. 6. 30. 12:06죽여, 에메트셀크!
비수 같은 절박한 외침이었다. 그는 죽는 그 순간까지도 제 고통을 숨기려 했던 것 같았다. 제 이빨에 찢기고 터진 입술에서 줄줄 흐르는 피가 그것을 증명했다. 그러나 최후의 순간에 지른 비명은 템페스트 하늘을 가르고, 이윽고 끔찍한 고요로 떨어졌다. 몸에선 천천히 날개가 돋았고 몸은 대리석처럼 굳어갔다. 등에서 솟은 금색 광채는 이윽고 후광처럼 그의 뒤에 저주스러운 빛을 냈다. 어깨부터 뻗은 날개는 제 몸보다도 크게 자라 탁한 몸을 감쌌다. 고장난 인형처럼 그것은 느릿하게 눈을 떴다. 색도, 초점도 잃은 눈은 아무것도 담아내지 못했다. 제 앞에 친애했던 벗이 있다고 하더라도. 난동이라도 부릴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그것은 속박 마저도 필요 없을 정도로 매우 얌전하게 굴었다. 다만, 소리 없이 울기 시작했다. 그것은 광장 벤치에 가만 앉은 채로 죽은 눈물을 투둑 떨어트렸다. 왜 우는거지? 우는 죄식자 따윈 본 일이 없었다. 지금 이 상황을 이해라도 하고 있단 말인가. 에메트셀크는 말없이 그 손으로 눈물을 닦았다. 눈가에 손가락을 대고 눈물을 훔쳐낸들, 얼음보다 차가운 눈물은 계속 떨어졌다. 만일 그가 울기라도 했다면 그만 울라고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제 앞에서 운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 먼 옛날 고대에도, 환생한 그의 생전에도 그랬다. 그의 삶은 눈물없인 볼 수 없는 분명한 비극이었는데도. 죽어서야 울 수 있는 그가 어쩐지 가엾어 에메트셀크는 그것이 계속 울게 두었다. 그러나 그렇게 한들, 그가 위로받진 못할 것이다. 그는 이제 어디에도 없으니까.
그것은 말을 걸어도 대답이 없었다. 죄식자들은 짐승에 가까운 울림을 내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지만 대죄식자들이 대부분 어느정도 수준의 소통이 가능하지 않던가. 그것은 무슨 말을 건네도 대답하지 않았다. 다만 가끔, 아주 작게 짧은 말을 중얼거렸다. 너무 작아서 제대로 귀 기울이지 않으면 무슨 말인지도 알아들을 수 없을 정도로 작은 목소리였지만 그것은 확실하게,
아파……
라고, 그곳에 있는 누군가에게 말하고 있었다. 그리곤 제 손을 묶은 보랏빛 사슬을 그에게 내밀었더랬다.
눈이 찢어지고 시력을 잃어도 괜찮다고 말하는 그가 죽어서는 별 것 아닌 속박에 아픔을 느끼다니. 그가 영웅이든 아니든, 어떤 삶을 살고 있어도 그 몸엔 어디서 어떻게 입었을지 추측도 되지 않는 흉터가 가득했다. 그럼에도 매번 웃으며 괜찮다고 말하는 그가 아니었던가. 죽은 시체가 아픔을 느끼긴 할까? 고통을 핑계삼아 무언가 꾸미려 하는 것이라면? 그는 제게 내밀어진 그 작은 손을 잡았다. 그 아픔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그것이 어떤 계략인지 아닌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듯 했다. 그것이 아프다고 말하고 있었다. 아프다고. 괴롭다고. 손목이 아프다는 그 말이 도리어 너무 아프게 느껴져서, 그는 결국 제가 묶은 사슬을 풀어주었다. 죽이라는 말에는 죽여주지도 못했으면서. 그는 제가 지독하게 이기적인 것을 알았다. 거둬주겠다는 약속도 지켜주지 못했고, 살아있는 그 모습으로 죽게 해주지도 못했다. 비명을 지를만큼 괴로운 고통을 감내하게 한 것도 사슬로 그 손발목을 묶은 것도 그저 제 옆에 조금이라도 더 두고 싶은 욕심 때문이었다. 그렇게 비참하게 죽였다면, 적어도 이 사슬만큼은 풀어선 안 됐을 것을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사슬로 꽉 조인 자리에 남은 부서진 금, 어그러지게 웃는 모습이나 회색빛으로 썩어가는 몸 뒤로 뻗쳐오는 광휘, 그 모든 것이 아프게 느껴졌다. 어쩔 도리도 없이.
대죄식자가 되면 세계를 닥치는대로 파괴하려 들 줄 알았는데, 의외로 그것은 제 몸을 속박하는 게 없어도 얌전히 굴었다. 대부분은 제 날개로 몸을 감싼 채로 가만히 앉아 있었다. 그것이 생전에 밖으로 내비칠 수 없던 욕망을 솔직하게 보이는 방식으로 존재한다면, 세계를 원망하고 망가트리고 싶다는 욕구를 한 번도 가지지 못했다는 게 될까. 그것은 죽어서까지 영웅이었다.
며칠 정도 그것을 돌보는 동안, 에메트셀크는 그것에게 퍽 친절하게 굴었다. 환영도시에 그것이 머물만한 곳을 만들어 밀어두었고, 그것이 평범한 인간처럼 생활할 리가 없는 것을 알면서도 사람이 와서 살 수 있을만한 환경을 만들었다. 깨끗하게 정돈된 방에 폭신한 침대, 깔끔한 취향의 쿠션과 몇 가지 시간을 보낼 수 있을만한 취미들. 먹을 리 없는 걸 알면서도 그 옛날에 좋아했던 음식을 가지고 오고, 안에 갇혀 지내는 것이 지루할까 데리고 나가 마카렌세스 광장을 걸어다녔다. 때론 좀 더 멀리 나가 심해 템페스트를 돌아다니기도 했다. 춥다는 그 한 마디에 자기 겉옷을 벗어 덮어주고, 외롭다는 말에 종일 그것의 옆을 지켰다. 생전에 도통 잠을 이룰 수 없었던 그것은 죽고 나선 대부분의 시간을 자는데 썼다. 날개로 자신을 감싼 채, 그의 옷을 덮고 바짝 웅크린 채로 잤다. 그것에겐 가구나 도구라는 개념이 없었기에 벽에 기대서 자기도 하고, 바닥에 쓰러져 자기도 하고, 드물지만 서서 자기도 했다. 잠에 든 그것은 건드리거나 흔들어도 잘 깨어나지 못해서, 그는 항상 아무데서나 자고 있는 그것을 들어 편한 곳으로 옮겼다. 무언가 한 가지 해줄 때마다 그는 그것의 생전에는 해주지 못했던 것을 후회했다. 그런 후회에 또 무언갈 더 해주려고 하고, 해주는 게 늘어날 수록 아쉬운 것이 늘고…… 그것과 함께했던 날들은 그 반복이었다. 그는 정말이지, 그것을 '살아있는 것'으로 여겼다. 그 며칠이 처절한 형태의 자기위로인 것도 알고 있었다. 이미 필멸도 죽었고, 불멸은 먼 옛날 부서져 사라졌다. 그는 그들이 남긴 텅 빈 껍데기를 억지로 붙들곤 곁에 있다고 제 자신을 속이려 들었다. 이 시체보다 차가운 냉기가, 그의 마지막 존재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