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va La Vida

COMMISSION2021. 5. 23. 22:46

BGM

Frankie Orella-Viva La Vida

 

   One minute I held the key
   Next the walls were closed on me
   And I discovered that castles stand
   Upon pillars of salt and pillars of sand

 

   반란은 실패했다. 반기를 들고 일어났던 모든 이들은 처참하게 칼에 찔려 죽든지, 창에 꿰여 죽든지, 마법에 불타 죽든지 이것도 저것도 아니면 스스로 성에서 투신해 죽었다. 그때 운 좋게 죽지 못했던 이들만이 왕성의 지하감옥에 처박혔다. 감옥은 몹시도 열악했다. 잿가루가 묵은 먼지와 함께 섞여 떠다녔고 벽이고 바닥이고 기댈 곳 하나 없이 딱딱하기만 했다. 덮을 것도 하나 없이 구멍 난 벽으로 바람이 들어와 한겨울처럼 추웠고 비라도 오는 날엔 빗물이 바닥에 찰 정도였다. 빠질 길도 없는 물은 또 다시 고이고 썩어 악취가 났고 꼭 바닥에 고인 물이 아니더라도 지하감옥은 어디든 냄새가 고약했다. 그리고 그 고약한 냄새에 걸맞는 회색 쥐나 검은 벌레들이 계절을 모르고 들끓었다. 그 모든 것은 아렌 스위프트의 고결한 자존심에 어울리지 않는 오염이었지만 그를 가장 처참하게 만든 것은 빛이었다. 아주 옅은 별빛조차 닿지 않는 이곳에 남은 것은 컴컴한 어둠 뿐이라 때론 먹을 것이나 물보다도 빛이 고팠다. 그는 자유란 그것을 쟁취할 능력이 있는 자만이 누릴 수 있는 권리임을 알았다. 그러니 그는 제게 자유가 없음을 한탄하지 않았다. 실패한 혁명가는 곧 반역자이므로. 하지만 빛은 어떻던가. 햇빛이란 아무런 대가 없이도 이 대지 위에 피어나는 모든 생명에게 평등하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었던가. 그러니 그는 때로 비가 새는 구멍난 벽을 넋을 놓고 바라보곤 했다. 그러면 언젠가 작은 빛이라도 비치진 않을까, 그것만이 한동안 그의 소망이 되었다. 빛을 바란 것일까, 절망의 끝에서 붙잡을 희망이 필요했던 것일까. 굽힐 프라이드마저 남지 않은 그는 차마 자신이 덧없는 희망을 붙잡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의 소망은 빛이 된 모양이었다.

   간절히 바란 덕인지 언젠가부터 작은 등불이 드문드문 그를 비추는 듯 했다. 당장 꺼질 듯 불빛은 가녀리고 약했지만 동시에 쏟아지는 비에도 꺼지지 않을 정도로 강했다. 얼핏 비치는 불빛이 몇 번 깜빡이고서야 아렌은 그것이 바라 마지 않던 빛임을 알았다. 그리고 그는 동시에 제가 바랐던 것이 지하 감옥 한 켠을 다 밝히지도 못할 만큼 작은 빛 따위가 아니었음을 깨달았다. 그는 줄곧 바랐다. 여기서 살아나갈 기적을. 지독한 완벽주의였던 그는 실패를 납득하지 못했다. 어떻게든 여기서 나가서 제 손으로 선택한 반역을 성공시켜야 했다. 그 끝에 제가 죽거나 살거나 하는 것은 아무래도 좋은 일이었다. 하지만 아직은 하늘이 그를 버리지 않았다고 말하듯, 그 불꽃은 어쩌다 지나가던 누군가가 들고 가던 빛 따위가 아니었다. 그것은 정말로 작은 희망이었다.

 

   "…갱글로프."

 

   갱글로프 게쉬, 그가 자신을 찾아왔으니.

 

   속내를 알 순 없었지만 아렌 스위프트에게 그는 다시 오지 않을 기회였다. 아니, 사실은 올 일도 없었던 기회이리라. 그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은근히 그를 떠보더라도 그는 언제나 확답없이 자리를 피했다. 은유적으로 돌려 말해도, 직설적으로 쏘아붙여도 그는 탈옥에 관한 이야기만 나오면 슬쩍 주제를 돌리거나 자리를 피했다. 피하다 못해 이젠 뻔뻔하게 이상한 농담을 갖다붙이려 들었다.

 

   "하하, 웃어야 기쁘단 말도 있잖아. 일단 웃는 것부터 시작해보지 그래?"

   "이 상황에 웃음이 나오겠어?"

 

   틱 쏘아붙이는 목소리가 제법 날카로웠다. 목소리만 그랬던 게 아니라 그는 실제로 이 상황이 싫었다. 상황만 싫었을까, 처음엔 한 줄기 빛처럼 느껴졌던 갱글로프가 미웠다. 그는 자신이 반란 측에 선 것이 실수라는 것을 인정하기 싫었기에 모든 화살을 그 공격을 버티고 우뚝 선 왕국으로 돌렸다. 오늘 달을 지새우고 내일의 해를 볼 수 있을지 조차 불확실한 상황에서 태평하게 웃기라도 하라는 말은 몹시 고깝게 들렸다. 동료였던 이들은 거의 대부분 전쟁 통에 죽었고, 살아남은 이들도 거의 옥사했다. 이런 검은 지옥에서도 악착같이 살아 숨쉬는 자는 그 혼자 뿐이었기에 그는 언어를 잊을 정도로 고립됐었다. 분명 이 감옥의 위에 있는 모든 존재가 그라는 인간을 완전히 잊어버렸다고 생각해도 좋을 정도였다. 오로지 갱글로프 게쉬, 그만이 아렌 스위프트라는 사람을 기억하고 드문드문 이곳에 오는 것 같았다.

 

   "여기 먹을 거 챙겨주긴 해? 주변에 죽은 반란 분자들 보면 아닌 거 같지만."

   "알면서 물어?"

 

 

   불퉁스럽게 쏘아붙여도 갱글로프는 어깨를 으쓱여 털어버렸다. 그럼 아렌은 그것이 또 짜증이 나 앙칼진 고양이처럼 굴었다. 아렌이 그를 어떻게 대하든, 갱글로프는 점점 관리가 허술해져 보는 눈이 없어진 후에 지금처럼 먹을 것을 챙겨주거나 작은 병 안에 물을 담아주고, 낡긴 했으나 도포 같은 것을 갖다 주기도 했다. 하는 짓을 보면 그를 도와주려고 하는 듯 했는데 탈옥 얘기만 하면 바로 내빼는 것이 아주 얄미웠다. 그래도 아사하기 전에 그에게 먹을 것을 챙겨주는 것도, 미친듯이 갈증에 시달릴 때 깨끗한 물을 가져다 주는 것도, 얼어죽기 전에 덮을 것이라도 한 두 장 챙겨주는 것도 갱글로프 뿐이라 아렌은 언젠가부터 은근히 그를 기다리게 되었다. 오늘 살아남은 것에 안도하고 나서는 내일도 눈을 뜨기 위해 그가 찾아오길 기다리며 철창 너머를 건너다 봤고 혹여라도 소리가 나면 잠결에라도 일어났다. 정말로 그가 오는 일은 그렇게 많진 않았기에 아렌은 점점 이전과는 다른 의미로 말라갔다. 그것이 그에 대한 특별한 감정인지는 차치하더라도 그에겐 정말이지 시간이 없었다. 시간이…….

 

I hear Jerusalem bells are ringing
Roman Cavalry choirs are singing

 

   아무리 더이상 여왕을 지키지 않겠다고 했기로서니 들고 일어난 무리에 그가 껴있을 거라곤 생각지 못했다. 눈을 마주치고 검을 맞대기라도 하면 숨통을 끊어놓지 못할 것이 두려워 은근히 그를 피했다. 다른 누군가가 차라리 죽여주면 그게 더 낫겠거니, 생각하기도 했지만 질긴 삶인지 용케도 살아 지하감옥에 처박혔다 했다. 살아서 감옥에 들어간 것은 몇 있었지만 분명히 죽느니만 못한 곳이었다. 그런 곳에 처박혀 말라갈 것이 성가실 정도로 신경쓰여서 일 없을 때도 괜히 지하를 내다보길 몇 번이고 반복했다. 차라리 한심하고 하찮게만 느껴졌다면 그런 미련스러운 짓은 하지 않았겠으나, 지하감옥에서 옥사한 사람이 생겼다는 말을 들을 적마다 드는 것은 그가 죽진 않았을까 하는 걱정과 지독한 연민이었다. 자신이 가지 않으면 제가 아는 누군가가 죽을 것이라는 기묘한 책임감도 함께였다. 딱히 그의 책임이 아닌 것을 알았지만 날이 갈수록 무겁게 마음을 짓누르는 것이 답답해 결국 등불을 들고 지하로 내려갔다.

   지하감옥은 익히 듣던대로 더럽고 지독한 냄새로 숨이 막혔다. 이런 곳에서 살 수 있는 건 바퀴벌레나 병든 쥐 밖에 없을거라고, 그는 첫 발을 디뎠을 때 생각했다. 그러니 여기에 갇혀서 뭘 제대로 먹지도 마시지도 못하고 며칠 째 살아있는 것이 오히려 기적같았다. 주어진 일이라면 악착같이 들러붙어서 죽을 때까지 매달리는 그 성깔에 쉽게 죽을거라고 생각지도 않았지만. 그래도 확실히 아렌은 곧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초췌했고, 또 안쓰러울 정도로 야위어 있었다. 스스로가 가장 잘났다고 자부하는 그답지 않은 모습이었다. 그렇게 초라한 모습은 차라리 보지 않는 게 나았을지도 몰랐다. 보지 않았다면 음식과 물을 가져다주고 옷과 덮을 것을 가져다주지 않아도 됐을테니까. 자신이 하는 일은 처음엔 인도주의적인 선의였다가, 나중엔 정에 못 이긴 편의였다가, 종국에는 반역에 가담하는 죄가 되었다. 스스로가 자신을 어떤 형태의 공범으로 만들고 있음을 알면서도 그는 도저히 쓸데없는 관심과 동정을 멈추지 못했다. 그러는 동안 갱글로프는 저도 모르게 여왕을 피하는 일이 잦아졌고, 자신의 충성을 의심하게 되었으며 그러면서도 식사를 조금 남겼고 버려지는 물건이 있으면 챙겨두었다. 동시에 여왕이 지하감옥의 일을 물을 때마다 어줍잖은 농담으로 얼버무렸고 사형집행일을 어떻게든 미루려고 이런저런 이유를 갖다대며 둘러댔다. 그는 자신이 아렌의 탈옥을 바라는 것인지 혼란스러웠으나 매번 아렌이 직접적으로 탈옥에 관한 이야기를 꺼낼 때마다 회피하며 자신에게 속삭였다. 탈옥을 도우는 것은 아니라고. 반역에 가담하는 것이 아니라고. 그렇게 하면서 반쯤 더럽혀진 충성을 지키는 것이 며칠이고 이어졌다.

 

   보름달이 뜨는 밤, 그는 며칠 만에 굳은 빵과 마실 물을 들고 내려가던 중에 멀리서 기병대의 노래를 들었다. 최근 정말로 해야할 일엔 소홀해진 탓인지 오늘 무슨 행사가 있었는지도 잊었다. 이상하게 지하감옥 문을 지키는 사람이 많아서 그는 일부러 챙겨왔던 빵을 어딘가 던져버리고 물병만 품 속에 숨겼다. 그는 무슨 변화가 있었는지 묻기 위해 무작정 그 앞을 지키는 누군가를 붙잡았다.

 

   "오늘 무슨 일이 있던가?"

   "그걸 네가 모르면 어떡해? 내일 지하감옥 수감자들을 처단하는 날이니까 오늘 미리 공표하는 거잖아."

   "아……."

 

   그는 의심을 사지 않도록 끄덕이곤 붙잡은 팔을 놓았다. 때가 왔는가. 그는 평소처럼 곧바로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밖에서 서성였다. 사실 그가 곧 죽을 반란 분자에게 최후의 만찬을 조금 챙겨줬다고 해서 곤란해질 일은 하나도 없었다. 오히려 처형식 이전에 죽으면 곤란하니 뭐라도 먹이는 게 나았을지도 몰랐다. 그는 그럼에도 자신이 망설이는 이유를 알았다. 내일이 처형이라면 지금은 그에게, 그리고 아렌에게 남은 마지막 기회였다. 그에게는 어떤 기회인가 하면, 정 든 친밀한 이를 살려 보낼 기회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러니 지금을 놓치면 다음은 오지 않으리라. 내일 그의 머리는 은쟁반 위에 올라갈 것이고 모두에게 공포와 기쁨을 주며 역사에 기록될 것이니까.

   날이 깊자 마지막 남은 죄인을 보러 온 구경꾼들은 대부분 사라지고, 그 앞을 지키고 선 보초 한 명을 빼곤 누구도 남지 않았다. 그럼에도 바깥은 여전히 축제인지, 누군가가 당장 내일 죽게 생긴 지금 이 상황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밝은 합창소리가 들렸다. 자정인지 온 도시에 울리는 종소리까지 들렸다. 그들에겐 정말이지 시간이 없었다. 시간이… 그는 오로지 그들에게만 급박하게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슬그머니 어떤 애틋한 감정이 고개를 드는 것이 느껴졌다. 그래서 오늘 날이 밝으면 이 나라의 역사에 더러운 죄인의 이름을 새기겠다는 선언은 갱글로프에겐 그렇게 들렸다. 너의 충성은 완전히 더럽혀졌다고.

 

I know Saint Peter won't call my name
Never an honest word

 

   그리하여 갱글로프는 솜씨좋게 서 있던 보초를 기절시켰다. 아렌이 도망친다고 하더라도 그 역시 이곳을 떠날 것인가 하는 문제는 별개이므로 그가 탈옥을 도왔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곤란했다. 구석엔 아렌이 언젠가 주고 갔던 갱글로프의 겉옷을 덮은 채 웅크리고 벽에 기대 있었다. 소리가 나는 쪽을 바라보는 텅 빈 눈은 갱글로프의 그림자를 알아보자마자 제 빛을 다시 찾았다. 그는 마지막 희망을 붙잡는 듯 절박하게 그 이름을 불렀다.

 

   "갱글로프…!"

   "그래, 나야. 이것저것 설명할 시간이 없으니 빨리 일어나."

 

   그의 너머로 열린 철창이 보였다. 보초는 기절한 채 바닥에 쓰러져 자고 있었다. 아렌은 저를 향한 갱글로프의 손을 잡고 일어섰다. 반대쪽 손엔 작은 물병이 들려 있었다. 그것은 약속된 이별이었다.

 

   "너라면 왕궁 길은 잘 알겠지. 내 마음이 바뀌기 전에 빨리 가."

 

   아렌은 정말로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도망쳤다. 언젠가 줬던 그의 겉옷을 걸치고, 물병을 품 안에 넣은 채 맨발로 이 지하감옥을 걸어 나갔다. 그들은 죽음이든, 탈옥이든 어떤 형태로든 있었을 이별에 아무런 감동도 약속되지 않았음을 알았다. 그러니 어떤 쓸쓸함도 고마움도 슬픔도 아쉬움도 남지 않은 채 그 암흑 뿐인 지옥에 남은 것은 갱글로프 뿐이라, 그는 무겁게 자신을 짓눌러오는 죄를 느꼈다. 제 손에 남은 것은 이미 썩을대로 썩어버린 거짓된 충성심이라, 진실된 마음은 어디에도 남지 않았다. 오로지 누구에게도 불리지 않을 공허한 이름만이 그 자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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